야생의 민들레(14)
야생의 민들레(14)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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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짚이는 것은 있었다. 검둥이와 흰둥이가 엉덩이를 붙이고 새끼 배는 짓거리 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고 그렇게 상(交接)하는 것이리라 짐작만 했다.

“부끄럽고 남사시러버라. 사람이 우떻기 짐승들 맨키로…. 산속에서, 하늘과 해와 나무가 내리다보는데….”

논개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혀끝으로 이죽거리면서도 왠지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몸을 할적마다 샅에 서답 차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되었듯 참으로 야릇한 마음이었다.

사내의 궁둥이가 유난히 솟구치고 여자의 소리가 찢어진다고 느껴질 즈음, 또다시 사내는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라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사내가 여자의 몸 위에서 옆으로 뒹굴 듯 비켜나고 여자도 이어나 앉았던 젓이다. 여자가 드러난 가슴을 여미고 훌렁 벗겨진 아래를 치마로 가리며 매무새를 고치기 시작했다. 이어 여자가 얼굴을 들고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순간, 논개는 숨을 들이켜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여자가 바로 섭냄이의 큰형인 옥개였던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 주시해 보아도 작은 눈에 들창코에 큰 입을 가진 옥개가 분명했다. 섭냄이 집 세 딸 중에 가장 얼굴이 못생겼다는 큰딸 옥개가 대낮 산속에서 사내와 상(交接)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논개는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개실 전답 많은 총각에게 올봄에 시집갈 끼라고 섭냄이가 그랬는데. 그라모 저 남자가….”

논개는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머리가 휭휭 휘둘리고 심장이 쿵쿵 절구질을 하는 통에, 눈 아래 그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퍼질러 앉아 있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논개는 앉은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한 소리를 내지르며 상을 하던 여자가 열여섯 살의 옥개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틀림없는 옥개였다. 논개는 누구에게 갑자기 얻어맞은 것처럼 몸뚱이와 머리가 계속 얼얼하여 앉은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심통이 많고 퉁명스러워도 속살이 희고 젖도 크고 바느질도 잘하고 음식 솜씨도 좋은 옥개 엉가라고 말하던 섭냄이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요악한 행투라며 논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사내가 장개실 전답 많은 집 그 총각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았다. 사내가 논개 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도 없었지만, 그러나 얼굴을 본들 장개실 그 총각을 본 적이 없는 논개로서는 알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논개는 그래도 옥개랑 상한 그 사내가 혼담이 오간 그 총각일 것이라 당연히 믿었다. 만약에 그 총각이 아니라면 이건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저께 섭냄이가 저거 집에 밭갈이한다 카던데, 한창 바쁜 때에 우쩌자고 옥개 엉가는…. 내사 안 본 걸로 해 뿌리모 고마이라 카지만, 상을 하모 아를 밴다 카던데…. 옥개 엉가 아 배모 우짜노. 불쌍한 백치도 아 뱃던데. 이러다가 동네가 망갈 끼다.”

논개는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손을 들어 자기 이마에 솟아 있는 땀을 닦아 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심장 박동도 가라앉고 마음의 평정도 찾았지만 논개는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장차 동네에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구경거리도 많아질 거 같아서 은근히 기대되는 바도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가엾은 백치가 쫓겨나고 옥개 엉가가 처녀로 애기 배서 동네 망신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혼자 어른처럼 고개를 꺼덕거리기도 했다.

“오매야, 그란데 내가 지금 머 하고 앉았제? 이리 정신 빼고 앉았다가 들개도 산괭이도 몬 잡고 나무도 몬 할 꺼 아이가. 하이고마, 오줌통이 터지네.”

논개는 벌떡 일어나서 치마를 걷어 올려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본다. 시원했다. 그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交接)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이사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그때부터 마렵던 오줌을 그들이 떠난 후에야 싸고 있는 것이다.

“하이고, 씨언도 해라!”

논개는 바지춤을 올리며 씽긋 웃는다. 오줌통에 가득 찼던 것이 밖으로 쏠려 나갔으니 시원도 했지만, 산 중턱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았으니 치부는 바람으로 아래가 참말로 서늘했던 것이다.

“히히, 참말로 오늘은 요상스런 날이다! 사람이 상하는 거를 다 보고. 그란데 그기 상하는 긴지 잘 모리겄지만, 궁디 까고 남자 여자가 붙어 있으모 그러는 기라꼬 주막집 아지매가 그랬은께 에나겄제.”

논개는 키들거리면서 이전에 살던 천변 주막집 주인 여자와, 물레방앗간에서 씨름하던 언년이와 최 부자 집 종놈을 떠올렸다.

논개가 여섯 살 땐가 그랬다. 주막집에서 오매와 함께 일하던 언년이가 대낮에도 걸핏하면 없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주막집 여자는 논개더러 언년이를 찾아오라고 사립 밖으로 내쫓곤 했는데, 그럴 때면 논개는 어김없이 주막에서 멀지 않은 곳의 비어 있는 물레방앗간으로 타박타박 걸어가곤 했었다. 방앗간 곳간의 짚 더미에서 언년이와 최 부자 집 종놈이 씨름하고 있는 것을 몇 번 보았기 때문이었다. 언년이는 논개에게 “나중에 꼬도밥하고 술찌게미 마이 줄텐께 아지매한테는 말하지 말거래이.” 했고, 배가 고팠던 논개는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언년이는 논개가 두 번씩이나 말하지 않았는데도 지에밥도 술지게미도 주지 않았다. 논개는 화가 나서, 그 다음번에는 주막집 여자가 묻는 대로 물레방앗간에 언년이 엉가가 있었다고 말해 버렸다.

“언년이가, 방앗간에서 뭐 하더노?‘

“씨름.”

“씨름이라 캤나? 누구하고 씨름하더노?”

“종놈.”

“시상에, 이것들이 대낮부터 들러붙었던가배? 논개가 상하는 것을 봤는개비네!”

“상하는 기, 먼데예?”

논개가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곤 주막집 여자에게 물었다.

“하이고, 대가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가시나가 눈 똑바로 뜨고 별거를 다 묻네? 상하는 기 머인가 하모 남자 여자가 궁디 까고 매 맞추는 기라. 언년이랑 종놈이랑 궁디 까고 씨름하제? 히히.”

그때 오매가 주방에서 나와 주막집 여자에게 어린애한테 안 할 소리 한다고 화를 냈었고, 주인 여자는 “와, 논개는 시집 안 보내고 끼고 살끼가? 일찌감치 걸차 주는 것도 나쁜 거는 아인 기라.” 했었다.

볼일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까투리 한 마리가 바로 눈앞에서 푸드덕 날아올랐다. 논개는 반사적으로 돌을 집었다가 그냥 놓는다.

“햐! 꽁고기 고마 날라간다. 괭이나 들개 없으모 꽁이라도 잡을 낀데. 그란데, 내가 지금 머 하노? 와 자꾸 헛생각질을 하제? 사람이 상하는거 봤으모 우쨋다 말이고. 얼렁 나무나 해야지.”

논개는 새삼 떠오르는 주막집 언저리의 옛 생각들을 거두고, 또한 바로 눈앞에서 날아가 버린 까투리에 대한 아쉬움을 거두고 땔감을 찾아 헤맨다.

소나무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의외로 마른 솔잎이 많았다. 동네 장정들은 앞 벌판 끝자락의 남산(南山)으로 땔나무를 하러 다녔다. 소나무를 베어 장작과 솔가지를 만들고 솔방울을 따고 다른 잡나무 둥치들을 잘라 겨울 내내 지필 땔감을 마련하려면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큰 산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높고 깊은 산이 못 되는 선학산에는 논개같은 어린아이들이나 부녀자들이 간혹 땔나무를 해 가는 정도인데, 그나마 한창 바쁜 밭갈이철이어선지 소나무 밑에는 올봄 들어 나무를 해 간 흔적이 없었다. 논개는 삽시간에 진갈색 솔잎을 긁어모았고, 가장자리로 솔가지를 덧대고 칡 줄기로 휘감아 머리에 이고 갈만큼의 나뭇짐을 만들었다. 우선 한 뭉치를 집에다 여다 놓고 다시 와서 아래쪽에 모아 놓은 잡나무 낙엽들과 솔잎을 좀 더 긁어 가리라 마음을 다진다.

“인자부터는 내가 짬짬이 나무를 해 놓아야 올 겨울도 넘길 테니 더 부지런히 해야겄다. 뭣이든 인자부터는 오매 있겠거니 하지 말고, 내가 다 해야제.”

지난겨울에는 오매와 큰 산에도 가서 솔가지도 꺾어 오고 솔잎도 긁어 왔었지만, 그러나 나날이 눈에 띄게 피골이 상접한 오매가 나무하기는 이제 무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논개는 나뭇짐을 굴려 바위 위에 올려놓고 그 아래로 가서 나무를 머리에 얹었다. 욕심을 부려서인지 나뭇짐 덩치가 여간 무겁지 않았다. 목이 자라목처럼 몸속으로 기어들 것 같았다. 그러나 엉버티고 휘청거리며 산 중턱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턱에서 나뭇짐을 아래로 굴려 버릴 수도 있었으나, 혹여 터지기라도 할까 봐 끝까지 머리에 인 채로 길도 없는 잡풀 속을 뒤뚱대며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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